Date:
06/01/2010
애리조나 '반이민법' 집회 동행 르포…한인 시위대에 경적·야유 '반이민 팽배'
100도 넘는 날씨에 아이부터 노인까지 참가
신분증 없어 체포 위험도 무릅 쓴 불체자도
▷작전명 '애리조나'
메모리얼 데이 연휴기간이지만 항의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LA와 시카고 등지에서 새벽부터 민족학교로 한인들이 모였다. 8살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버스가 팜 스프링스를 지나 애리조나 접경지역에 접어 들자 민족학교 관계자가 자는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곧 이어 안전지침이 전달됐다. 경찰이 버스를 세우고 불신검문을 하면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면 '애리조나'라고 답하고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분증은 모두 수거했으며 기자증은 갖고 있는 조건으로 기자 역시 신분증을 민족학교 관계자에게 맡겼다. '혼자만 살겠다고 대답을 하거나 신분증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포될 수도 있습니다.' 적진에 몰래 침투하는 특수부대처럼 버스 안은 이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피닉스에 다다르자 옆 차선에 경찰차가 나타났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경찰차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경찰차는 다행히 우리가 탄 버스를 지나쳐 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버스에 동승한 인권 변호사 크리스씨가 참가자들을 진정시켰다.
▷ 매케인에게 슬리퍼 선물
피닉스에 도착한 버스가 처음 멈춘 곳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 사무실. LA에서 온 라틴계 시위대와 함께 매케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매케인 당신은 배신자.' '11월 선거에서 처참한 결과를 각오하라.' 성난 시위대는 사무실을 점거한 채 20분 이상 시위를 펼쳤다.
일부는 플립플럽 수십개를 사무실 직원에게 전달했다.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지지하던 매케인 의원이 국경강화를 지지하자 입장을 뒤집었다(플립)며 비꼰 것이다. 순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무실에 들이 닥쳤다. '여기에서 당장 나가시오.' 경찰의 명령에 따라 모두들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위대는 길가에서 다시 시위를 시작했다. 민족학교 풍물패가 시위를 주도했고 길을 가던 일부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를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치켜 내리며 시위대에게 야유를 보내 단편적이지만 애리조나의 반이민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밤 10시쯤 숙소에 돌아왔다. 애리조나주에 대한 항의로 이들은 현지에서 돈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호텔이나 모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이 지역 이민단체에서 제공한 창고 건물의 2층을 빌려 숙박하기로 했다.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건물은 밤이 깊어서까지 식을 줄 몰랐고 설사가상으로 냉방을 위해 틀어 놓은 선풍기로 인해 실내는 먼지가 날려 잠을 청하기 어려운 악조건이었다.
▷행진의 아침이 밝아오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던 중 멕시코 국기와 멕시코 무장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얼굴이 새겨진 갈색 유니폼을 입은 이 지역 '브라운 베렛' 책임자가 숙소를 방문해 인사를 건넸다. '멀리서 와주어 너무나 고맙습니다. 오늘 멋진 행진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힘을 모아 이민개혁을 이뤄냅시다.' 시카고에서 온 이은영씨는 오늘 있을 행진에 대해 큰 기대를 나타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숫자가 많으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더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SB1070이 철폐되는 것은 물론 서류미비 학생들을 위해 드림법안이 빨리 통과됐으면 좋겠어요.'
▷100도의 날씨보다 뜨거운 이민개혁의 소망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집결지인 '스틸 인디언 스쿨 파크'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모여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피켓 멕시코 국기 성조기 등을 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모든 이민자에게 정의를' '이민개혁' 'NO 1070' '드림액트를 통과시켜라' 'Si Se Puede('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스페인어)'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10시가 조금 넘어 행진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의 99%가 라틴계였다. 문득 오늘 이 행사가 한인들이 나설 자리가 맞는지 궁금했다.
민족학교 윤희주 디렉터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오지 않으면 이민개혁 문제는 라티노의 이슈로 전락해 버립니다. 다른 소수민족들은 결집하기가 어려워 참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우리가 참가한 것입니다.'
이민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라틴계 말고 한인들도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날 최고 기온은 화싸95도 가량이었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지열과 건물에서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체감온도는 100도가 훨씬 넘는 듯 했다.
힘든 행진으로 인해 구토를 하고 또 코피를 흘리는 사람들도 생겼났다.
▷인종차별적 법안 철폐돼야
한인 시위대는 프로농구팀 피닉스 선즈의 홈구장 'US에어웨이즈 센터'를 지나 시청앞으로 지났다. 순간 뜻하지 않게 SB1070을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백인 남성이 길가에 나타났다.
흥분한 시위대 일부가 그 남성에게 접근했고 서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인근에 있던 경찰이 출동해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드디어 목적지인 애리조나 주청사에 진입했다.
이민개혁을 위한 의지 하나로 힘든 행진을 성공리에 마무리 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올리비아 박 간사는 애리조나의 이민단속법이 철회될 수 있도록 한인사회의 관심을 부탁했다. '이민개혁에 대한 문제는 비단 라틴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애리조나에선 한인들도 불심검문을 받고 구치소로 끌려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민자 커뮤니티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0. 06. 01)
신분증 없어 체포 위험도 무릅 쓴 불체자도
▷작전명 '애리조나'
메모리얼 데이 연휴기간이지만 항의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LA와 시카고 등지에서 새벽부터 민족학교로 한인들이 모였다. 8살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버스가 팜 스프링스를 지나 애리조나 접경지역에 접어 들자 민족학교 관계자가 자는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곧 이어 안전지침이 전달됐다. 경찰이 버스를 세우고 불신검문을 하면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면 '애리조나'라고 답하고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분증은 모두 수거했으며 기자증은 갖고 있는 조건으로 기자 역시 신분증을 민족학교 관계자에게 맡겼다. '혼자만 살겠다고 대답을 하거나 신분증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포될 수도 있습니다.' 적진에 몰래 침투하는 특수부대처럼 버스 안은 이내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피닉스에 다다르자 옆 차선에 경찰차가 나타났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경찰차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경찰차는 다행히 우리가 탄 버스를 지나쳐 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버스에 동승한 인권 변호사 크리스씨가 참가자들을 진정시켰다.
▷ 매케인에게 슬리퍼 선물
피닉스에 도착한 버스가 처음 멈춘 곳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 사무실. LA에서 온 라틴계 시위대와 함께 매케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매케인 당신은 배신자.' '11월 선거에서 처참한 결과를 각오하라.' 성난 시위대는 사무실을 점거한 채 20분 이상 시위를 펼쳤다.
일부는 플립플럽 수십개를 사무실 직원에게 전달했다.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지지하던 매케인 의원이 국경강화를 지지하자 입장을 뒤집었다(플립)며 비꼰 것이다. 순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무실에 들이 닥쳤다. '여기에서 당장 나가시오.' 경찰의 명령에 따라 모두들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위대는 길가에서 다시 시위를 시작했다. 민족학교 풍물패가 시위를 주도했고 길을 가던 일부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를 격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치켜 내리며 시위대에게 야유를 보내 단편적이지만 애리조나의 반이민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밤 10시쯤 숙소에 돌아왔다. 애리조나주에 대한 항의로 이들은 현지에서 돈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호텔이나 모텔 등을 사용하지 않고 이 지역 이민단체에서 제공한 창고 건물의 2층을 빌려 숙박하기로 했다. 애리조나의 뜨거운 햇볕에 달궈진 건물은 밤이 깊어서까지 식을 줄 몰랐고 설사가상으로 냉방을 위해 틀어 놓은 선풍기로 인해 실내는 먼지가 날려 잠을 청하기 어려운 악조건이었다.
▷행진의 아침이 밝아오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던 중 멕시코 국기와 멕시코 무장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얼굴이 새겨진 갈색 유니폼을 입은 이 지역 '브라운 베렛' 책임자가 숙소를 방문해 인사를 건넸다. '멀리서 와주어 너무나 고맙습니다. 오늘 멋진 행진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힘을 모아 이민개혁을 이뤄냅시다.' 시카고에서 온 이은영씨는 오늘 있을 행진에 대해 큰 기대를 나타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숫자가 많으면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더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SB1070이 철폐되는 것은 물론 서류미비 학생들을 위해 드림법안이 빨리 통과됐으면 좋겠어요.'
▷100도의 날씨보다 뜨거운 이민개혁의 소망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집결지인 '스틸 인디언 스쿨 파크'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모여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피켓 멕시코 국기 성조기 등을 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모든 이민자에게 정의를' '이민개혁' 'NO 1070' '드림액트를 통과시켜라' 'Si Se Puede('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스페인어)'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10시가 조금 넘어 행진이 시작됐다. 참가자들의 99%가 라틴계였다. 문득 오늘 이 행사가 한인들이 나설 자리가 맞는지 궁금했다.
민족학교 윤희주 디렉터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오지 않으면 이민개혁 문제는 라티노의 이슈로 전락해 버립니다. 다른 소수민족들은 결집하기가 어려워 참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우리가 참가한 것입니다.'
이민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라틴계 말고 한인들도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날 최고 기온은 화싸95도 가량이었지만 아스팔트가 내뿜는 지열과 건물에서 반사되는 햇빛 때문에 체감온도는 100도가 훨씬 넘는 듯 했다.
힘든 행진으로 인해 구토를 하고 또 코피를 흘리는 사람들도 생겼났다.
▷인종차별적 법안 철폐돼야
한인 시위대는 프로농구팀 피닉스 선즈의 홈구장 'US에어웨이즈 센터'를 지나 시청앞으로 지났다. 순간 뜻하지 않게 SB1070을 지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든 백인 남성이 길가에 나타났다.
흥분한 시위대 일부가 그 남성에게 접근했고 서로 욕설을 퍼부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인근에 있던 경찰이 출동해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드디어 목적지인 애리조나 주청사에 진입했다.
이민개혁을 위한 의지 하나로 힘든 행진을 성공리에 마무리 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올리비아 박 간사는 애리조나의 이민단속법이 철회될 수 있도록 한인사회의 관심을 부탁했다. '이민개혁에 대한 문제는 비단 라틴계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애리조나에선 한인들도 불심검문을 받고 구치소로 끌려갈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민자 커뮤니티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0. 06.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