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05/12/2010
“불체가 이토록 큰 죄인가요”…40대 한인 밀입국 20년 만에 붙잡혀
1년째 수감생활 단란한 가족 와르르
시민권자 아내 주유소서 일해 생계이어
아들은 자폐증… 14살 여동생이 돌봐
“민수야, 간섭하는 아빠가 없으니까 신나지. 하지만 아빠는 민수가 너무 보고 싶구나. 민수가 지금은 몸이 불편해 자유롭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여느 아들 못잖게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단다. 좀 힘들고 답답해도 잘 이겨내자. 화이팅!”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존스크릭에 사는 김민수(가명·16) 군은 아버지로 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민수 군의 아버지 김현수(가명·49)씨는 지난해 밀입국 혐의로 이민국에 체포돼 1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민수 군은 이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민수군의 아버지 김씨는 이른바 ‘불법 체류자’다. 지난 87년 미국에 밀입국한 뒤 96년 영주권자였던 아내 박희정(가명·44)씨를 만나 결혼했다. 임신중 아들 민수 군이 자폐증 판정을 받았지만 부부는 “귀한 생명을 버릴 수 없다”며 낳아 키울 정도로 오붓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체류 신분 문제 만큼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아내 박 씨는 남편의 불체자 신분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지난 99년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소용없었다고 박씨는 한탄했다. “밀입국자인 남편은 시민권자와 결혼해도 합법 체류 신분이 될수 없음을 알고 또다시 절망했죠. 결국 일하며 먹고 살기에 바쁘다 보니 체류신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 씨 가족의 행복이 깨진 것은 지난해 4월 28일. 당시 세탁장비를 판매하던 김 씨가 발행했던 수표가 부도처리 되면서 우려했던 ‘일’이 터져다. 김씨의 수표를 받은 한인은 수표 사기 혐의로 김씨를 고소한데 이어 김씨가 불체자라는 사실을 이민국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아무리 불체자라지만 같은 한인이 이민국에 신고했다는데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김씨는 재판을 거쳐 수표 사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민국 추방재판에 회부됐다.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 했지만 “밀입국 혐의는 심각하기 때문에 추방을 피할수 없을 것”이라는 말만 듣고 1년을 흘려보냈다.
김씨가 수감되면서 남은 가족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부인 박씨는 로렌스빌의 한 주유소에서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아들 민수 때문이다. 다행히 민수 군은 14세인 여동생이 돌보고 있다. 현재 김씨 가족은 박씨의 주급 300달러와 푸드스탬프(극빈층 음식보조) 200달러로 살고 있다.
김씨 가족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난 10년간 김씨는 불체 신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언젠가 시행될 불체자 사면을 대비해서다. 부인 박씨는 “남편이 밀입국이라는 실수는 저질렀지만, 세금을 납부하고 시민권자 가족과 정직하게 살면 미래가 오리라 믿었다”며 “그러나 최근 애리조나 반이민법을 비롯한 남부의 반이민 정서로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체념했다.
김씨 가족은 한때 그가 추방되면 가족 모두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도 고려했다. 그러나 자폐증인 아들 민수 군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김씨 가족을 돕고 있는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는 “장애인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 한국에서 중증 자폐증인 아들이 과연 살아갈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없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박씨는 미국 생활이 후회스럽고 원망스럽다. “남편도 구할수 없는 시민권이 무슨 소용인가요. 살인자도 감옥서 5년~10년 살면 세상에 나와 가족들과 사는데, 남편은 영원히 가족을 보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불법체류가 살인보다 더 큰 죄인가요.”
그러나 박씨는 오늘도 자녀를 보며 기운을 낸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이대로 죽어버리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지요. 하지만 자폐증 아들과 착한 딸을 보면서 오늘도 살자고 생각하죠. 남편이 죽을 죄를 져서 끌려간 것도 아니고, 같은 땅에 살다보면 언젠가 다시 보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0. 05. 12)
시민권자 아내 주유소서 일해 생계이어
아들은 자폐증… 14살 여동생이 돌봐
“민수야, 간섭하는 아빠가 없으니까 신나지. 하지만 아빠는 민수가 너무 보고 싶구나. 민수가 지금은 몸이 불편해 자유롭게 표현하기 힘들지만, 여느 아들 못잖게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단다. 좀 힘들고 답답해도 잘 이겨내자. 화이팅!”
어버이날인 지난 8일, 존스크릭에 사는 김민수(가명·16) 군은 아버지로 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민수 군의 아버지 김현수(가명·49)씨는 지난해 밀입국 혐의로 이민국에 체포돼 1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민수 군은 이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자폐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민수군의 아버지 김씨는 이른바 ‘불법 체류자’다. 지난 87년 미국에 밀입국한 뒤 96년 영주권자였던 아내 박희정(가명·44)씨를 만나 결혼했다. 임신중 아들 민수 군이 자폐증 판정을 받았지만 부부는 “귀한 생명을 버릴 수 없다”며 낳아 키울 정도로 오붓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체류 신분 문제 만큼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아내 박 씨는 남편의 불체자 신분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지난 99년에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소용없었다고 박씨는 한탄했다. “밀입국자인 남편은 시민권자와 결혼해도 합법 체류 신분이 될수 없음을 알고 또다시 절망했죠. 결국 일하며 먹고 살기에 바쁘다 보니 체류신분을 해결하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 씨 가족의 행복이 깨진 것은 지난해 4월 28일. 당시 세탁장비를 판매하던 김 씨가 발행했던 수표가 부도처리 되면서 우려했던 ‘일’이 터져다. 김씨의 수표를 받은 한인은 수표 사기 혐의로 김씨를 고소한데 이어 김씨가 불체자라는 사실을 이민국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아무리 불체자라지만 같은 한인이 이민국에 신고했다는데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김씨는 재판을 거쳐 수표 사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민국 추방재판에 회부됐다.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 했지만 “밀입국 혐의는 심각하기 때문에 추방을 피할수 없을 것”이라는 말만 듣고 1년을 흘려보냈다.
김씨가 수감되면서 남은 가족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부인 박씨는 로렌스빌의 한 주유소에서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아들 민수 때문이다. 다행히 민수 군은 14세인 여동생이 돌보고 있다. 현재 김씨 가족은 박씨의 주급 300달러와 푸드스탬프(극빈층 음식보조) 200달러로 살고 있다.
김씨 가족의 미래는 암울하다. 지난 10년간 김씨는 불체 신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언젠가 시행될 불체자 사면을 대비해서다. 부인 박씨는 “남편이 밀입국이라는 실수는 저질렀지만, 세금을 납부하고 시민권자 가족과 정직하게 살면 미래가 오리라 믿었다”며 “그러나 최근 애리조나 반이민법을 비롯한 남부의 반이민 정서로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체념했다.
김씨 가족은 한때 그가 추방되면 가족 모두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도 고려했다. 그러나 자폐증인 아들 민수 군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김씨 가족을 돕고 있는 베다니감리교회 남궁전 목사는 “장애인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 한국에서 중증 자폐증인 아들이 과연 살아갈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없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박씨는 미국 생활이 후회스럽고 원망스럽다. “남편도 구할수 없는 시민권이 무슨 소용인가요. 살인자도 감옥서 5년~10년 살면 세상에 나와 가족들과 사는데, 남편은 영원히 가족을 보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불법체류가 살인보다 더 큰 죄인가요.”
그러나 박씨는 오늘도 자녀를 보며 기운을 낸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이대로 죽어버리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지요. 하지만 자폐증 아들과 착한 딸을 보면서 오늘도 살자고 생각하죠. 남편이 죽을 죄를 져서 끌려간 것도 아니고, 같은 땅에 살다보면 언젠가 다시 보리라 믿습니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0. 0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