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자가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시민권 취득을 미뤄왔던 한인 여성 박경희(43)씨는 미루고 미루던 시민권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이민정책이 급변하고 있어 영주권만으로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다. 영주권자 신분으로 그간 미국 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박씨가 시민권을 취득하기로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불안감 때문. 박씨는 “트럼프 때문이죠. 불체자가 추방대상이라지만 영주권자도 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될 수 있다고 해서 시민권을 따야 안심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발동으로 이민단속과 추방작전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영주권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신분이 보장되는 영주권자들조차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 앞에서 신분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영주권자들의 문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가 취임한 지난 달부터 였다. LA 등 미 전역 대도시들의 이민자 단체들에는 시민권 취득절차와 방법을 문의하는 이민자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고, 이민자 단체들이 주최하는 시민권 웍샵에는 시민권을 신청하려는 영주권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웍샵에 참가하려는 대기자들이 크게 늘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이민자들의 대기 기간도 예전에 비해 2배 이상 길어지고 있다.
영주권자들은 취업 편의성이나 가족이민 초청 또는 선거 참여 등을 위해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엔 신분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이유가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 LA 컨벤션센터에서 시민권 선서식을 가진 이란 출신의 에릭 대니알리나(21)는 “시민권자가 되고 나니 이제야 좀 안전해진 것 같다”고 안도감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인기가 상승하던 지난해 부터 시민권을 취득한 영주권자는 100만명에 육박해 9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신분불안을 해소하려는 영주권자들이 갈수록 늘 것으로 보여 올 한해 시민권을 취득하는 영주권자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영주권을 취득한 지 5년이 지나 시민권 신청 자격을 갖춘 영주권자는 현재 미 전국에 88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시민권 신청을 미루고 있는 한인 영주권자도 약 18만명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한인들의 시민권 신청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목 기자
한국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7. 0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