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불법체류 한인들 '전전긍긍'
Date:
10/31/2011
反이민법, 히스패닉 불체자 겨냥하지만 한인에도 유탄
한인사회서 '단체행동 필요' 여론 나오지만 분파주의 극복이 과제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경찰에 잡히더라도 끝까지 싸워 이길 것입니다.'
미국의 반이민법에 맞서 싸우는 한인 동포 여성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와 애틀랜타에서 중ㆍ고교를 마친 김은진(20.영어명 케이시 김) 씨다.
그는 올여름 `조지아주 서류미비자 학생동맹(Guyaconnect.com)'을 결성해 주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권리찾기' 투쟁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는 관광비자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뒤 새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서류 미비자'(Undocumented)가 됐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체류 신분 때문에 장학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입학을 미루고 학비가 싼 공립대학을 알아봤지만 이번엔 주정부가 5개 주요 공립대에 불법체류자가 입학하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쳐 앞길이 막혀버렸다.
그 사이에 입학 유예기간이 지나 그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한때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도 품었지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 하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생각을 접었다.
그 대신 인터넷 공간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학생들과 뜻을 모아 투쟁의 길을 택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으로 거의 모두 히스패닉이다. 한인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소수인종 권익단체 등의 지원을 받고 있어 외롭지 않다.
29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미국은 내 나라이고 내 가족이 사는 나라다. 여기서 나갈 이유도, 떠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혼자가 아니어서 겁나지 않는다. 설사 잡혀서 추방 재판을 받더라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수도 워싱턴 DC 인근에 거주하면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최재혁(가명.31세) 씨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2001년 캐나다 서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한 그는 2004년 미국에서 아내와 결혼했다.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는 엄연히 불체자다.
미국에 불법 입국한 사람은 배우자가 미국 시민이더라도 영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최씨는 신분증인 운전면허증과 사회보장카드를 브로커에게 수천달러를 주고 만들었다.
2년 전 면허 갱신을 앞두고 고민하던 그는 '이 참에 경찰에 잡혀 법정 투쟁이라도 하자'는 각오로 운전면허소를 찾아갔다.
용케도 직원 눈을 속이고 새 면허증을 손에 넣었지만 최근 공화당이 피고용인에 대한 전자고용인증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받고 다시 들어올 생각도 했지만 불체자는 추방되면 10년은 미국 땅을 밟을 수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어렵게 살아갈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는 이민개혁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보다 갈수록 불법이민자를 범죄자처럼 여기는 미국 사회의 시선이 원망스럽다.
10명 중 8~9명꼴로 불체자인 히스패닉 동료와 그 가족들이 범죄 피해를 보고도 불체자란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추방되는 현실 앞에서 절망할 때가 잦다고 했다.
그는 '반이민법이 이곳 버지니아주까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나 같은 불체자와 가족들은 진짜 숨도 못 쉬게 될 것'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법입국자인 최씨는 근래 들어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이보다는 한인 업체로부터 취업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왔다가 세금신고 문제 등으로 비자 갱신에 실패해 불체자로 나앉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 한인 변호사는 '예를 들어 연봉 3만달러 계약을 맺고 한인업체에 취업했다면 업주는 세금신고 때 3만달러를 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한 번만 신고가 빠져도 여간해선 불체자 신세를 벗지 못하게 만든 이민법의 경직성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반이민법은 히스패닉 불체자를 겨냥한 것이지만 10명 중 2~3명이 불체자인 미국 내 한인도 유탄을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한인회를 비롯한 동포사회 내부에서는 정치결사체까지 구성한 히스패닉처럼 `행동'에 나서자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인사회에서는 여전히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다. 고향과 학교, 정치 성향에 따라 나뉘고 찢기는 고질적인 분파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선 강력하고도 단합된 목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1.10.29)
한인사회서 '단체행동 필요' 여론 나오지만 분파주의 극복이 과제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경찰에 잡히더라도 끝까지 싸워 이길 것입니다.'
미국의 반이민법에 맞서 싸우는 한인 동포 여성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와 애틀랜타에서 중ㆍ고교를 마친 김은진(20.영어명 케이시 김) 씨다.
그는 올여름 `조지아주 서류미비자 학생동맹(Guyaconnect.com)'을 결성해 주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권리찾기' 투쟁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는 관광비자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뒤 새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서류 미비자'(Undocumented)가 됐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사립대에 합격했지만 체류 신분 때문에 장학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입학을 미루고 학비가 싼 공립대학을 알아봤지만 이번엔 주정부가 5개 주요 공립대에 불법체류자가 입학하지 못하도록 차단막을 쳐 앞길이 막혀버렸다.
그 사이에 입학 유예기간이 지나 그는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한때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도 품었지만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 하는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생각을 접었다.
그 대신 인터넷 공간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학생들과 뜻을 모아 투쟁의 길을 택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으로 거의 모두 히스패닉이다. 한인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소수인종 권익단체 등의 지원을 받고 있어 외롭지 않다.
29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미국은 내 나라이고 내 가족이 사는 나라다. 여기서 나갈 이유도, 떠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혼자가 아니어서 겁나지 않는다. 설사 잡혀서 추방 재판을 받더라도 자신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수도 워싱턴 DC 인근에 거주하면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최재혁(가명.31세) 씨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2001년 캐나다 서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한 그는 2004년 미국에서 아내와 결혼했다.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둔 아내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는 엄연히 불체자다.
미국에 불법 입국한 사람은 배우자가 미국 시민이더라도 영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최씨는 신분증인 운전면허증과 사회보장카드를 브로커에게 수천달러를 주고 만들었다.
2년 전 면허 갱신을 앞두고 고민하던 그는 '이 참에 경찰에 잡혀 법정 투쟁이라도 하자'는 각오로 운전면허소를 찾아갔다.
용케도 직원 눈을 속이고 새 면허증을 손에 넣었지만 최근 공화당이 피고용인에 대한 전자고용인증제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받고 다시 들어올 생각도 했지만 불체자는 추방되면 10년은 미국 땅을 밟을 수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어렵게 살아갈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는 이민개혁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보다 갈수록 불법이민자를 범죄자처럼 여기는 미국 사회의 시선이 원망스럽다.
10명 중 8~9명꼴로 불체자인 히스패닉 동료와 그 가족들이 범죄 피해를 보고도 불체자란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추방되는 현실 앞에서 절망할 때가 잦다고 했다.
그는 '반이민법이 이곳 버지니아주까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나 같은 불체자와 가족들은 진짜 숨도 못 쉬게 될 것'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법입국자인 최씨는 근래 들어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이보다는 한인 업체로부터 취업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왔다가 세금신고 문제 등으로 비자 갱신에 실패해 불체자로 나앉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 한인 변호사는 '예를 들어 연봉 3만달러 계약을 맺고 한인업체에 취업했다면 업주는 세금신고 때 3만달러를 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한 번만 신고가 빠져도 여간해선 불체자 신세를 벗지 못하게 만든 이민법의 경직성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반이민법은 히스패닉 불체자를 겨냥한 것이지만 10명 중 2~3명이 불체자인 미국 내 한인도 유탄을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한인회를 비롯한 동포사회 내부에서는 정치결사체까지 구성한 히스패닉처럼 `행동'에 나서자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인사회에서는 여전히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다. 고향과 학교, 정치 성향에 따라 나뉘고 찢기는 고질적인 분파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선 강력하고도 단합된 목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 발췌 (신문 발행일 2011.10.29)